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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다큐

EBS 다큐 - 아이의 사생활 3부 (+ 1, 2부 요약)

by 냐냐리냐 2014. 2. 11.

아이의 사생활 1부는 남자와 여자간에는 각 분야에서 능력의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한마디로 하면 남자는 체계화능력이, (사물의 작동 원리, 시스템의 구조 같이 어떤 대상을 구분하고 정리하고 구조를 밝혀내는 등의 능력) 여자는 공감능력 (언어능력, 멀티태스킹 능력 등도 여성이 더 좋았다)이 더 발달했다는 거다.

똑같은 남자(혹은 여자)라 하더라도 남성성과 여성성의 정도에 따라서 그 아이가 나타내는 성향이 다르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 차이는 뱃 속에 있을 태아시절 테스토스테론의 분비 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것이라면서, 그에 따라 남성성이 강한아이는 (약지의 길이/검지의 길이)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했다. 즉, 테스토스테론이 많이 분비될 수록 약지의 길이가 길어지므로, 손가락 길이 비율 조사를 통해 여성적인 남자아이인지, 남성적인 여자아이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다는것. 실제로 이런 가설이 과학적으로 연구된다는게 신기했고 또 그 근거가 나름 논리적이라는게 와닿았다.

결론적으로 남자와 여자 간에는 생물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보았을 때, 실질적인 차이가 나타난다는 거다. (이외에도 뇌 어떤 영역에 관한이야기 등등도 있었던 것 같다)


아이의 사생활 2부는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다. '도덕성이 높은 아이는 똑똑하다'가 아니라, '똑똑한 아이가 도덕성이 높다'는 생각을 다큐를 통해 처음 해보게 됬다.

도덕적인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 도덕적인 판단으로 끝날때는 도덕성이 높다고 할 수 없다. '도덕성이 높다'에는 인지한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는 것 까지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 옳고그름에 대한 판단과 인지능력, 공감능력, 행동으로 옮길수 있는 행동력, 그리고 자제력과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모든 능력이 있어야 도덕성이 발휘될 수 있기에, 필연적으로 도덕성이 강한아이는 여러 능력들에서 뛰어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첫째로 도덕성을 판단할 때, 이성적인 판단 능력과 실제 행동에 옮기는 능력을 분리해 생각한다는 것, 둘째로 도덕성이 발휘 되기 위해선 여러 능력들이 (특히 자제력과 용기는 도덕성과 함께 생각해본 적이 적었던 것 같다) 뛰어나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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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부. 3부가 가장 와닿았다. 현 시점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말을 영상을 통해 들은 기분이다. 너무 당연하지만 당연하니까 잊고 있었던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3부가 '자아 존중감'에 대해 다룬다고 했을때는 의아했다. 뻔한 이야기를 할 것 같았고, 자아존중감에 대해 50분동안 이야기할 거리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참 묘한게, 세상살이가 그렇듯, 다큐는 누구나 다 아는 주제와 소재를 가지고 다른 방식의 서술을 통해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자아 존중감이 낮은 아이는 타인에대한 공감능력이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역설한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고 공감이 갔다. 본인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이가 타인을 잘 공감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자아존중감이 낮아서 항상 자신만을 생각하느라 타인에 대한 생각을 할 에너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참 역설적이다. 자아 존중감이 낮다는 말은 본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말인데, 오히려 더욱더 본인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상적으로는 자기가 자신을 생각하면 답이 없으니까 다른쪽으로 정신을 쏟고있어야 하는게 맞다. 자기가 자기를 좋아하는것도 아니고, 이미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뭐가 좋다고 또 자기 생각을 해. 

근데 졸업후의 내가 거의 매일매일을 정확히 그렇게 살고있다. 다른사람을 만나기 꺼려하고 힘들어하는것도 솔직히 내가 스스로 근심거리를 만들어서 근심의 세계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뭐 다큐에도 나오듯이 여가생활 열심히하고 다른사람 만나고 부모님과 시간 많이 보내고, 그러고 살면 된다. 그런데, 내가 다른사람들과 만나서 수다떨고 놀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그 순간에 완전히 몰입을 할 수없는 것같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는다. 책을 읽을 때는 정말 거의 매 순간, 영화를 볼때도 가끔, 그리고 가장 문제가 되는 건데, 사람들을 만날때 내가 100퍼센트의 에너지를 가지고 대한다는 느낌이 안든다. 한마디로 말하면 대충 살고 있다? 타인을 만나도 완전히 교감할 수 없고 (타인을 잘 이해하지 못하나보다, 타인에 대해 어느 선 이상을 공감하지 못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용석이 말마따나 내가 감성이 부족한걸수도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하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진 않았지만 요즘 내 심리적 기저는 계속해서 저런 문제(대인관계에 있어서, 교류 상황에 전적으로 내가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답답하고 너무 지친다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나 어떻게 해야되는지에 대해서나. 그런데 다큐를 보면서 참 명쾌한 해답을 얻었다. 낮아진 자아존중감 때문이라는 거. 당연히 내 모든 문제의 근원이 결국 자기애가 부족하고 자아존중감이 부족한거 때문이었는데 왜 이 대인관계나 공감능력 어쩌구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내가 근 몇년간 약간 이상해 보이고 속을 알 수 없는것처럼 보인것도 이때문이다. 항상 그냥 '자존감 낮아서 문제야'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가 다큐(교수나 연구진//나는 권위의 법칙의 노예인가보다)를 통해서 자아존중감이 사람의 어떤 능력과 특성들에 연관이 되는지 눈으로 직접 보니까 이제야 가려웠던 부분이 긁어진 기분이다.

잘 할 수 있다고 말한 아이는 실제로 더 잘 했다. 내 짧은 인생경험으로만 봐도 남이 뭐라건 자기 할일 신경안쓰고 하는 애들이 공부도 잘했고 삶을 더 윤택하게 꾸려나갔다. 약간 기죽어있고, 행동하기 전에 남 눈치를 먼저 보는 습관이 들어있는 친구들은 뭔가 부족한 삶을 살거나 설령 잘 살고있더라도 항상 곡소리부터 먼저 나오더라. 

자아존중감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는데 이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적어도 그간 혼자서 근심을 만들고 혼자 근심속에 빠져있어 보면서 낮은 자아존중감을 안고서는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게 당연한 소리가 아닌게, 인간실격을 쓴 다자이 오사무나 암울한 그림 그린걸로 유명한 미술가, 그리고 염세적인 노래들을 부르는 성공한 가수들 등등을 보면서 낮은 자아존중감은 안고 살아가도 되는, 어떤 사람들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런 거라면서 어느정도 안심을 하고 있었던것 같다. 염세적이거나 우울한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우울한 경우가 당연히 많고, 그거는 시대상황 때문인것도 있겠지만 다자이 오사무처럼 순전히 낮은 자아존중감 때문인 경우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제는 이렇게 살면 좋게는 못살겠다는 위기감이 제대로 든다)  성공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중에 하나로써 자아존중감이 들어있는게 아니라 자아존중감이 인생 자체의 향방을 결정하는것 같다. 인생 행복하려고 산다고들하는데 행복이랑 연관된 1순위가 자아존중감인거를 이제야 깨달았다. 당연한거 이제 느꼈다고. 

가려웠던 부위 누가 긁어준 기분이라서 참 좋다.

지금 이렇게 글만쓰고 자면 결국 어느 순간에는 다시 관성에 의해 그간의 모습과 그간의 마인드로 돌아오게 될거라는 것을 안다. 내가 낮은 자아존중감을 겪은 주요인은 이상자아와 현실자아간의 격차가 크기 때문이고, 격차가 컸던 이유는 항상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 남이 무언가를 하면 나도 그것을 해야하고 더 잘해야할거같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학부모들이 아이들 학업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다른학부모가 뭘 하면 본인도 그걸 해야될거같다고 느끼는 마음과 비슷하다. 이런 마음부터 고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왠진 모르겠으나 괜히 책이나 영화를 읽고있으면 남이 생각나고 그럴때가 많으니까. 내생각에 한가지 해법은 바쁘게 사는것이다. 집에있으면 늘어지지말고 운동하고, 여유시간 생기면 책도 도서관가서 읽어버리고 그래야겠다. 바쁘게 살고 열심히 살아야지.. 뭐 매일 똑같은 결론이다. 또 하나 지켜야될건 '부정적인 생각 안하기', '내탓만하지 말기'. 당장 글 쓰다가 부정적인 단어나 나를 부정하는 표현을 쓰면 바로 지워 버릇하자.


당연히 인간이라면 진화생물학적 논리에 따라서도 생존을 위해 막연한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해야 한다. 하지만 답이나올수 없는 그와같은 문제에 매몰되어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것은 한번사는 삶을 낭비하는 거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한달전쯤에 그림 배워볼라고 산 책의 첫번째 장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드로잉 능력을 빨리 기르고 싶으면 그림을 그린 후 평가할 때의 마음가짐을 달리하면 된다고. 보고 그린 대상과 그린 그림을 하나하나 비교해가면서 '이부분은 실제랑 다른데 내가 왜 그랬을까'라면서 본인 자책하고 잘못그린부분 다시 고치고, 또 고치고 그짓 반복하고 그러면 그림실력 안오른다. 왜냐면 생산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조금 크게 보면서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아 실제 대상은 저렇게 생겼으니까 다음에 그릴때는 곡선을 어떻게 그리면 되겠네, 비율은 어떻게 해보면 되겠네' 등의 질문을 던지고 그림을 그릴때는 흥미도 유지되고 실력도 오른다. 그림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삶에 대한 통찰적인 생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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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

- 솔직히 3부 내용 더 많이 있었는데, 나는 이만큼만 보고 느낀 바도 참 값진거같다. 놓치고있던걸 발견한 기분이다. 결국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낮은 자아존중감이었다. 답이 너무 당연한거여서 원점으로 돌아온 기분이지만 확신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기니까 (왠진 모르겠다) 이제는 다시 잘 살고 싶은 욕심이 커졌다. 다큐 시작부분에서 '성공에 가장 중요한 요인은 자아 존중감이다'라는 것에 이제 가슴으로 이해가 된다.

- 자아존중감 : 내가 타인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자기 가치를 느끼는것. 그리고 자신감으로, 주어진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믿는것

- 거의 매일매일을 혼자만의 슬픈 세계 (참 병신같다. 솔직히 이만큼 했으면 잘했고 아빠 말고는 내가 걱정해야할 거리가 저언혀 없다.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는 99%의 이유가 아빠 아픈것 때문이 아니고 솔직히 내 이상적 자아랑 현실적 자아간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런거였으면서 괜히 남들한테 이야기할때는 아빠핑계대면서 합리화했다. 이런부분에있어서 나는 나에게 너무 솔직하지 못하고, 또 이런 미친것같은 상황이 닥쳤음에도 아직 남들에게 허심턴회하게 주욱 던지고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한심스럽다)에 살다가 간만에 놓치고있던 깨달음을 얻은 기분이다.

- 솔직히 이 외에도 더 쓸 이야기가 있다. 내가 느꼈던 박탈감이나 낮은 자아존중감을 겪어야 했던 이유는 이상자아랑 현실자아랑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 이상자아를 줄일 필요가 있다.


(글을 올리는 이유도 결국엔 나 스스로 떳떳해 지기 위함이다. 사실 정상인이라면 글을 쓰고 안올리겠지. 근데 그냥 그건 내맘이다)


+a2) 와닿았다 말고 마음에 강하게 들어왔다, 머리에 강하게 각인되었다 같은 느낌의 표현이 뭐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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