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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짐승』(모니카 마론) 소감, 발제

by 냐냐리냐 2022. 8. 5.
슬픈 짐승

슬픈 짐승

모니카 마론 저/김미선 역 | 문학동네 | 2010년 03월 15일 | 원제 : Animal triste

 

 

※ 소감

AZ animals : Brachiosaurus

- 슬픈 짐승은 동독 출신 고생물학자인 여성 화자와 서독 출신 개미 연구가 ‘프란츠’가 독일 통일 직후 나누었던 사랑이야기이다. 화자는 본인 인생에 뒤늦게 찾아온 ‘청춘의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순수하고 아름답기만 한 사랑은 아니다. 둘 다 정상적인 가정이 있는 중년이기에 둘의 관계는 불륜이다. 화자는 오히려 서로 중년의 나이에 만났기 때문에 나눌 이야기가 많이 축적되어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 아흔살, 백 살에 가까운 노파가 자기 기억을 더듬어 회고하는 형식으로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줄거리가 삽화 위주이고 기억이 파편적임에도 당시 화자가 느꼈던 감정과 생각이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어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없었다. 책 자체는 짧지만 굉장히 여러 번 나누어서 읽었다.  

- 소설의 분위기도 염세적이다. 가볍고 재밌게 읽을 책은 아닌 것 같다. 화자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주변인들의 불행을 바란다. 행복한 그 사람들의 모습에 프란츠의 아내가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 화자는 ‘청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로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다. 본인 남편에 대한 묘사와 구체적인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에 나오지 않는다. 본인 남편을 언급한 부분을 다 모아도 한 페이지가 안된다. 오히려 딸이 기르고 싶어 했던 강아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길다. 그만큼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간접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화자가 어떤 남편을 만났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남편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하나 있다. 딸이 길고양이를 여덟마리나 데리고 와 살다가 남편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음을 알게 되고, 후에 천식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를 받자 남편은 고양이를 내쫓겠다고 하기보다 본인이 나가 살아야겠구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불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따뜻한 사람은 아닐까 싶은데, 화자는 이게 못마땅했던 걸까? 프란츠의 어머니는 딸들이 좋은 남편에게 시집가게 하려고 무용 강좌를 듣게 하고, 승마 클럽을 다니게 한다. 당시의 시대상이 그랬을까. 화자도 이런 식으로 남편과 결혼을 했던 걸까 싶다. 

 아무튼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이 선망하는 브라키오사우르스를 ‘아름다운 생물’이라고 말하는 프란츠에게 끌렸을 수 있다. 본인이 일하는 박물관의 브라키오사우르스 뼈 전시장 앞에서 프란츠와 만나고, 대화하고, 사랑에 빠졌다. 

 

베른하르디너

- 화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온다. 그때는 독일이 분단된 상태였고, 전쟁 중이었다. 전쟁 속에서도 화자는 소꿉친구 한지와 함께 죽은 쥐를 ‘작은 토끼’라고 부르며 소꿉놀이를 했다. 안타까웠다. 한지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베른하르디너라는 커다란 개의 등위에 올라타 광장을 돌아다니기까지 했다. 둘이 어떻게 멀어졌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만약 한지와 계속 가깝게 지냈다면, 막말로 한지랑 결혼했다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다. 

- 소설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화자가 굉장히 안쓰럽고 처절하다고 느껴졌다. 프란츠는 화자의 집에서 외도를 할 때 항상 12시 반이 지나면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화자는 프란츠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를 혼자서 상상한다. 프란츠와 아내가 함께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프란츠의 집구석구석을 상상하고, 프란츠가 자기 집에서 나누었던 사랑을 아내와 똑같이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며 괴로워한다.  

- 중후반부로 갈수록 화자의 집착이 심해진다. 프란츠를 소유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심해진다. 프란츠가 아내와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날 때 따로 항공편을 구해서 여행을 몰래 따라가 훔쳐볼 정도이다. 이 때도 프란츠가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괴로워한다. 이때쯤부터 소설의 제목인 ‘슬픈 짐승’이 눈에 들어왔다. 왜 굳이 슬픈 ‘짐승’이라고 제목을 지었을까 생각하며 읽었다. 

- 후반부로 갈수록 프란츠에 대한 주인공의 독백은 점점 궤변처럼 느껴지고 별로 귀담아듣고 싶어지지 않는다. 이미 눈먼 사람이며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으면서 왜 그렇게 느껴졌나 조금은 알게 됐다. 나 스스로가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을 잊고 산지 너무 오래됐다. 그렇기에 자기가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비논리적인 생각과 행동들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만 느껴졌다. 

 

- 이 소설이 특이한 점은 단순히 분단으로 인해 서로 멀어진 사람들의 비극을 다루지 않고, 오히려 통일 이후 자유가 주어졌을 때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준다는 점인 것 같다. 가장 직접적인 예시는 라이너와 앙케의 이야기다. 라이너는 자신을 장벽 너머로 탈출시켜준 앙케와 결혼해서 15년간 서독에서 살다가 통일이 되지마자 앙케를 떠난다. 헤어지고 싶을 때마다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억제했지만 자유가 주어지자 그녀에게 빚진 게 없다며 헤어졌다. 

 화자의 친구 아테와 알리의 이야기도 특이하다. 알리는 베를린 서쪽 출신의 무명 배우였는데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장벽이 생기던 밤에 아테의 침대에서 잤다. 이 때 알리는 소송 중이었고, 다시 벽 건너편으로 넘어가면 감옥을 가야 했기에 차라리 아테의 집에 남게 된다. 아테는 알리를 사랑했지만, 알리는 자유가 주어지자 그녀를 떠났다. 

 내가 가장 마음 아팠던 이야기는 지그린데의 이야기다. (132-133pg) 지그린데의 남편은 젊은 시절 자신이 사랑했던 다른 여인 레나타가 분단 이후 사라졌으나, 다시 통일이 되자 눈앞에 나타났다며 굉장히 반가워한다. 순진한 지그린데는 처음에 마냥 반가워한다. 남편의 격렬함 속에서 절망을 느꼈지만 자신이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레나타가 채워준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까지 가졌다. 남편은 레나타에 대한 사랑을 털어놓았다. 지그린데는 ‘사랑의 발작’이 가라앉을 때까지 남편이 레나타의 집으로 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레나테에게 가는 것이 정말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가 또 물었어. 그래서 내가 당신은 반드시 그리로 가야 한다고 말했지. 당신이 그렇게 사랑에 빠져있는데 내가 당신과 함께 무엇을 하겠느냐고 말이야. 내가 그의 짐까지 싸주었어.” 지그린데는 너무 웃느라 수프가 목에 걸려 얼굴 위로 눈물이 흐를 때까지 기침을 해댔다. 

 

당시 전쟁 중이었기에, ‘기이한 시대’에 살았기에 벌어질 수 있는 사랑이 자유가 주어지자 어떻게 변하는지, 그리고 자유가 주어지자 기존에 있던 관계가 어떻게 연해질 수 있는지 소설이 보여준다. 

 

- 이 책이 불륜에 대해, 파괴된 결혼생활에 대해 중점을 두지 않는다는 건 잘 알고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주변 친구들이 결혼을 슬슬 하고 있고, 만나도 결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걸 듣다 보니 결혼 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막연한 동경이 있다. 평소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중년의 나이에 평범한 가정을 두고 외도를 하고, 그걸 본인 인생에 처음 있는 ‘청춘의 사랑’이라고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가 너무 싫었다. 

-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여성화자와 프란츠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진다. 화자의 아버지는 전쟁 후 돌아와 생기를 잃고 권위만 남은 인물이었고, 프란츠의 아버지는 전쟁 후 영국 여자와 바람나 가정을 떠나버린 무책임한 인물이었다. 화자에게 결혼 생활은 따분한 것, 가치 없는 것, 권위적인 것이었다면 프란츠에게 결혼 생활은 지켜야 하는 것, 책임을 다 해야 하는 것, 소중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프란츠는 서독 사람인 스스로를 로마인(지성인)으로 여긴다면, 동독 사람인 ‘나’를 비로마인(야만인)으로 여긴다. 반대로 화자는 동독인과 서독인 간에는 소도시와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차이보다도 더 적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독인이 생각하는 서독인, 서독인이 생각하는 동독인은 서로 달랐나 보다. 우리가 보는 북한 사람, 북한 사람이 보는 우리가 다르듯이. 

 

 

 

※ 발제 

[1] 책에 브라키오사우르스에 대한 언급이 정말 많습니다. 물론 책에 브라키오사우르스가 화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자세히, 여러 차례 서술되어 있습니다. 근데 작가는 왜 굳이 브라키오사우르스를 소재로 가져왔을까요? 정답이 궁금하다기 보다 각자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2] 각자 청춘의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 책에 나온 표현 

(화자) “나는 청춘의 사랑이 없었어. 어쨌든 행복한 사랑은 없었어. 내가 사랑한 사람은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나를 좋아했던 사람은 누구도 내가 좋아하지 않았지.”  

(프란츠) “프란츠에게는 청춘의 사랑이 있었다. 그가 내게 그렇게 얘기했다. … 그들의 얼굴에는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승리감의 확신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이 서로를 위해 태어났다는 것, 영원히 서로의 곁에 머물게 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3] 본인에겐 청춘의 사랑이 꼭 필요한가요? 

 

[4] 분단, 전쟁 / 반대로 휴전, 종전이 결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책에 나온 예시 

- 당시에는 남자 한 명당 여자가 2.5명이라고들 했다. 

- 그 전에 제출되었던 이혼소송 중 다수가 취소되었다. 누구나 맹목적으로 자기 옆으로 손을 뻗어 그전에 자신의 것이라고 지칭했던 것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이미 내던져버렸던 것도 다시 잡았다. 그것이 새로운 환경하에서는 쓸모가 있는 것으로 증명될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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