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세계미술감상] 신윤복의 그림을 통해 본, 조선시대 고위계층의 풍류와 로맨스..

by 냐냐리냐 2015. 11. 4.

조선시대 풍속화의 대표주자 김홍도/신윤복

 

김홍도와 신윤복은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림의 분위기는 많이 달랐죠. 김홍도가 노동하는 사람을, 신윤복은 놀이를 즐기는 양반을 즐겨 그렸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그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조선 후기의 다양한 생활상을 접할 수 있습니다.

 

신윤복은 자를 입부(笠父), 호를 혜원(蕙園)이라 하며. 화원으로서 첨사(僉使)를 지냈습니다. (궁중화가였다는 뜻) 檀園 金弘道(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후기의 풍속화를 대성시킨 인물로. 특히 기녀(妓女)와 한량 등을 등장시키고 남녀 간의 애정을 곧잘 소재로 택하여.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로 능숙하게 묘사하였습니다. 신윤복은 화원화가였기 때문에, 양반들의 생활상과 풍류를 그림을 통해 세밀하게 묘사하였습니다.

 

 

[1] 쌍검대무

 

[옛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림으로 만나는 조선] 신윤복의'쌍검대무'

http://kids.hankooki.com/lpage/culture/201510/kd20151027161126136190.htm

[풍속화] 혜원 신윤복-쌍검대무(雙劍對舞)

http://www.daegucity.net/bbs/board.php?bo_table=B25&wr_id=5


신윤복, 쌍검대무, 종이 담채, 28.2 35.2cm, 간송미술관

(혹은 아래의 형식으로 작품 기술)

제목 : 쌍검대무(雙劍對舞)

언제 : 18세기 중엽 ~ 19세기 초

재료 : 화첩 종이에 채색

규격 : 28.2 x 35.3cm

소장 : 간송미술관

 

 

이 그림은 세력있는 귀족이 장악원(掌樂院)의 악공(樂工)들과 가무(歌舞)에 능한 기생을 불러다가 즐기는 장면입니다. 악공과 기생의 수로 보아 이 놀이가 보통 규모는 아닌데. 이를 즐기는 사람들은 오직 주인대감과 그의 자제낭관(子弟廊官)인 듯하니, 일가의 세도가 어지간한 모양입니다.

 

'쌍검'은 두 자루 칼, '대무'는 서로 마주하여 추는 춤을 뜻합니다. 이 그림에는 여성 무용수와 관객인 양반, 그리고 악기 연주자들이 등장합니다. 그림의 두 여성은 칼을 갖고 추는 '검무'라는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림에선 칼을 든 무용수들의 동작이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검무의 동작은 매우 빠르답니다.

 

그림 위쪽에는 관람객들이 있습니다. 대나무 등받이에 등을 기대어 앉은 사람이 신분이 가장 높아 보이네요. 그 뒤편에 앉은 이는 갓을 뒤로 제쳐 쓴 채 편안히 앉아 있습니다. 그 위에는 한 소년이 부채를 들고 있네요. 갓과 옷이 커 보이며, 어색한 표정으로 보아 일찍 장가를 든 어린 신랑으로 짐작됩니다. 오른쪽 맨 끝에 초롱을 쓴 남자도 소년처럼 어려 보이지요. 어린 나이의 두 사람이 이 자리에 참석한 데에는 무언가 사정이 있는 가 보네요. 그 사이에 앉은 두 기녀(잔치나 술자리에서 노래나 춤 등으로 흥을 돋우는 여자)는 용모가 곱고 단정한 모습입니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면 그림 속 현장은 양반들의 모임에 무용수와 악사를 불러 공연을 감상하는 자리인 것 같네요. 술과 음식이 보이지 않은 걸 보면, 경건하게 공연을 감상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래쪽의 악공들은 검무에 어울리는 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모두 여섯 명의 악공이 다루는 악기는 해금피리대금장고북 등의 전통 악기입니다.

 

검무의 매력은 검을 돌리거나 회전하는 동작과 그때 나는 소리입니다. 칼로 바람을 가르거나 칼이 부딪치는 소리는 검무에서만 들을 수 있지요. 그리고 검무는 살벌한'전쟁 무용'과는 다릅니다. 힘찬 기상을 보여주지만, 평화롭고 유연한 동작을 감상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무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윤복은 약 250년 전 그린 '쌍검대무'를 통해 우리 눈앞에서 당시의 검무를 생생히 재현해 주고 있습니다.

[2] 월하정인 / 월야밀회

 

=> 두 작품 모두 남녀가 야밤에 만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지만, 남녀의 신분이나 만나는 분위기가 다릅니다. 둘 다 밤에 밀회하는 그림이지만, 대조해서 설명하면 좋을 것 같아서 두 그림을 묶었습니다.

 

1) 월하정인

[네이버 지식백과] <월하정인>, 혜원 전신첩- 신윤복 (간송미술문화재단)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75221&cid=46721&categoryId=46879

[네이버 포스트] 조선시대에도 남녀간의 은 있었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83834&memberNo=295254&vType=VERTICAL


신윤복, “월하정인”, 수묵채색화, 18세기 후기, 28.2 35.6cm, 간송미술관, 국보135

 

눈썹달이 침침하게 내리 비치고 있는 야밤중에 등불을 비춰 든 선비 차림의 젊은이가 쓰개치마를 둘러 쓴 여인과 담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이 어떤 사이이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호젓한 곳에서 남의 눈을 피하여 은밀히 만나야 하는 사람들인 것만은 틀림이 없는 듯합니다.

 

예법을 생명으로 알던 왕조귀족들로서 젊은 선비가 드러내놓고 사랑을 한다는게 용납되지 않는 시대였을 겁니다. 그래서 젊은 선비가 어른들의 눈을 피하여 집을 빠져 나오느라 이렇게 야심한 밤에 密愛(밀애)를 할 수밖에 없었나 봅니다.

 

여인은 밤이 늦어서야 나타난 사나이가 야속하다는 듯 여간 새침을 떨지 않으니 답답한 남자는 무엇으로나 달래 보려는 듯 품속을 더듬어 찾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 안타까워하는 마음이야 두 사람이 어찌 각각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화제(畵題)달은 침침하고 삼경인데,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안다.(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知 / 월침침야삼경 양인심사양인지)” 라고 하였으니,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이런 애틋한 사랑은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신윤복 화가는 조선 후기 남녀의 로맨스를 에로틱하면서도 낭만적인 情趣(정취)를 풍기는 한국적인 멋을 살려 멋지게 표현했습니다.

 

 

2) 월야밀회

 

[네이버 지식백과] <월야밀회>, 혜원 전신첩- 신윤복 (간송미술문화재단)

http://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ie=utf8&query=%EC%9B%94%EC%95%BC%EB%B0%80%ED%9A%8C

서울경제, [갤러리산책] 신윤복의 월야밀회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310/e20131021182026132450.htm


신윤복, 월야밀회, 수묵채색화, 18세기 후기, 28.2 35.6cm, 간송미술관, 국보 135

 

 

장안의 인적이 끊어지고 보름달만 휘영청 밝게 비치는 야밤중에 골목길 후미진 담 그늘 아래에서 남녀가 어우러져 깊은 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남자의 차림새가 전립(氈笠)을 쓰고 전복(戰服)에 남전대(藍纏帶)를 매었으며 지휘봉 비슷한 방망이를 들었으니 어느 영문(營門)의 장교(將校)임이 분명한데, 이렇듯 노상에서 체면 없이 여인에게 허겁지겁하는 것은 필시 잠깐 밖에는 만나 볼 수 없는 사이인 때문일 것입니다.

 

차림새가 여염(: 백성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의 여인은 아닌 듯하여 이 장교를 만나고 있는 여자의 전력도 대강 짐작이 갑니다. 조선왕조 시대의 화류계를 주름잡았던 사람들이 대개 각 영문(營門)의 군교(軍校)나 무예청 별감(武藝廳別監) 같은 하급무관(下級武官)들로서 이들이 기생의 기둥서방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을 상기할 때, 군교 차림과의 이러한 애틋한 밀회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오늘날로 치면 재벌이나 검사들이 화류계 여성이나 예쁜 일반인들을 골라서 스폰서하는 관계랑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월야밀회에 포착된 장면은 불륜 현장이라고 해설하곤 합니다. 바로 옆 담모퉁이에 비켜서서 동정 어린 눈길로 이들을 지켜보는 여인은 사람의 기척에 무척 신경 쓰면서 가슴을 졸이고 있는 듯한데, 이 여인은 이 밀회를 성사시킨 장본인일까요 아니면 남자의 아내가 뒤를 밟아온 것일까요...

 

--------------

 

이렇듯 신윤복의 그림은 조선후기, 양반과 고위직 계층의 풍류적인 삶과, 남녀 간의 로맨스를 우리나라의 고유 화풍으로 아름답게 묘사했습니다. 혹자에겐 그냥 그림 한 폭일 수 있지만, 당대의 분위기와 그 시대 사람들이 겪었을 생활과 사랑을 200년이 더 지난 현대 사람들에게 느끼도록 해준다면, 그림의 힘은 위대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