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상담을 받기에 저번주 목요일부터 이번 금요일까지 8일 밖에 시간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번 주에는 특히나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번 목요일에 상담을 받고나서 아버지 친구 분과 술을 마셨고, 심리학회를 처음 나갔고, 다시 블로그를 열정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보컬학원을 처음갔고, 헨즈에 처음 갔고, 몇 개월 만에 처음으로 외로움을 느꼈고, 오랜만에 책 한권을 빠르게 읽었고, 몇 군데 학원 면접을 보러 갔고 상담끝나고는 학원 강사를 처음 시작 했다. 혼자 있을 시간도 많았고 나를 압박하는 상황은 없었지만, 바깥 세상이랑 연결되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했고 또 이런저런 상황이 많았던 한 주였던 것 같다.
저번 상담에서 선생님이 내 자기방어기제에 대해 생각해오라 하셨다. 그래서 나는 내가 '격리'라는 자기방어기제를 사용하고 있는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
** 격리란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그당시 느낀 감정을 배제한 체 사건만 기억하는 것이다. 그당시의 내 감정과 기분은 무의식에 저장되고 그 때의 감정을 자각하고 기억할 수 없다. 그리고 격리를 자기방어기제로 갖는 사람들은 보통 강박증세가 있다. 강박증상이란 어떤 행동이나 어떤 생각에 집착하는 것이다. 가령 항상 손을 집착적으로 씻는 사람이라던지.
위의 말씀을 드리고 내가 중고등학생때부터 일기를 쓰곤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나는 내 감정을 해소하고자 쓴다기보다는 자기반성적인 글을 많이 썼다. 나만보는 일기인데 괜히 객관화 해서 '내가 이 상황에서는 이런저런 잘못을 했고 이거는 내가 고쳐야할 점이고 다음부터는 이러지말자'와 같은 형식의 일기가 굉장히 많았다. 나중에 보면 그때 내가 창피하거나 안좋은 일이 있었다는건 아는데 그때 내가 어떤 감정으로 그랬고 어떤 기분이 들었지는 몰라서 그냥 그때 일이 창피하고 흑역사처럼 느껴지기만 했다. 이런 일기를 쓴 적도 있었다. ‘너가 지금 이렇게 무기력하고 게으르게 20대 초반을 보내면 나중에 너가 후회안할 자신 있냐? 다들 이때 불꽃처럼 열정적으로 지내는데 너는 뭐하고있냐?“ 등등. 의사선생님은 내 얘기를 다 들으시더니 그정도면 충분히 병적이며 강박증상이 있는것이라고 하셨다.
최근 몇 번의 상담에서 의사선생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말씀은, 내가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벽주의는 단어에서 오는 느낌과는 다르게, 성적이 상위권인 학생이나 뭐든지 잘해내고 꼼꼼한 사람들만이 갖는 성질이 아니다. 그냥 본인 스스로 매사에 기준점을 정하고 그것에 미치지 못할 경우 불편함과 고통을 느끼며 우울해 하면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것이다. 가령 어떤 학생이 '나는 성적이 50%에만 들어도 만족해라'고 말해놓고 실제로 중간정도의 성적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은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구체적인 방향 없이 뭐든지 잘해야하고 어느정도의 성과를 이루어내야할 것같은 압박감과 강박감을 가진사람들은 완벽주의성향이 있는거다. 그런데 내가 딱 그랬다. 그런데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다. 특히 의대생들은 더하다.
나는 학창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나는 2%부족한 아이라는 이야기를 항상 꾸준히 들으며 자라왔다. 그렇기에 ‘나는 최선을 다했다’라는 명제에 대한 판단 기준이 나 스스로에게 있는게 아니라 결과에 있다. 가령 내가 열심히 했더라도 100점을 맞지 못하고 90점을 맞았으면 나는 최선을 다한게 아닌거다. 항상 무엇을 하던 기준은 맞춰야하고 잘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왔던 것 같다.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항상 기본을 강조하셨는데 기본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어느정도 성과를 내야한다는 압박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대한민국에서 완벽주의 성향은 학창시절부터 길들여지는 것 같다. 쌤께선 교육에 있어 부정적인 피드백은 학생이 변화하는데 가장 효율이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가령 학생에게 시험에서 80점을 넘지 못하면 매질을 할 것이다 / 80점을 넘으면 포상을 해줄 것이다 라고 이야기했을 때 전자의 경우 효율이 더 좋다는 것. 더 빨리 더 많이를 강조하는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교육자들은 부정적 피드백을 활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자아실현보다는 학생들에게 더 높은 기준점을 만들도록 요구하며 이를 위해 채찍질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수능과 대입이라는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고등학교 시절은 이런 방법이 통할지 몰라도, 이제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고 노력해야하는 대학생활부터 이런방법은 옳지 못하다. 저런 방법을 사고방식으로 갖고 있는 사람은 그 이후의 삶이 불행할 수 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나아가야할 방향도 모른채 '무언가를 해야한다', '어떤걸 하면 좋다', '항상 어느정도의 성과는 내야한다', '남보다 잘해야한다' 등등의 생각 말이다. 하는일 없이 가만히 휴식하고 있으면 불안하고, 항상 꾸준히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바다한가운데에서 육지의 위치도 모른 채 그저 열심히 노를 저어야한다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과 동일한 이치이다.
자기방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눈 뒤에 얼마전에 꾼 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진짜 꿈을 안꾸는 사람인데, 얼마전에 간만에 꿈을 꾸었고 그 꿈이 되게 이상했다. 나는 기계과에서 반수해서 의대를 왔는데 꿈 속에서 나는 기계과를 다시 입학해서 다니고 있었으며 엄청 행복해했다.
근데 나는 의대에 온 것을 진심으로 만족한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성형외과를 진심으로 들어가고싶다. 나는 사람 얼굴이나 사람을 그리는걸 좋아하는데 (나한테는 워낙 힘든 일이라 자주 안한다) 조그마한 비례의 차이에 따라서 느껴지는 인상이 확 달라진다는걸 그림그리며 깨달았다. 그리고 성형외과 교수님께 이메일을보내 몇몇 논문을 받아 읽어보면서 실제 성형외과 교수들도 아름다움을 위한 미간과 눈의 비율, 인중과 코, 입술의 비율 등등 얼굴에 있는 각 비율들을 조금씩 조정하며 선호도를 조사한다는것을 깨달았다. 또한 미용성형을 EBM(Evidence based medicine)으로 분류할 수 있는지가 현 미용성형의 하나의 쟁점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성형외과에 관심도 있고 꼭 성형외과가 아니더라도 의대온 것 자체를 만족하는데 왜 나는 그런 꿈을 꾸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결론을 내렸던건 내가 지금 의대를 유급하면서 거의 혼자다니고, 인간관계가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니까 친구들이 많은 서울대에서, 그것도 친한친구들이 있는 서울대 기계과에서 공부하며 다시 소속감을 느끼고 안정된 마음을 찾고자 해서 그런거라고 생각했다.
이에 대해서 선생님은 꿈을 해석할땐 꿈의 컨텐츠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안되고, 그것들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내 경우엔 ‘기계과’에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갈망하고 그것을 가질 경우 더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대나 공대를 갈 수 있는데 의대를 간다면 공대를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할 것이고, 반대로 공대를 갔더라면 의대를 가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결핍해하는 것에 대해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완벽주의와도 연결이 된다.
마지막에 선생님께서 지금 상담이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나도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내가 최근 정신분석에 관심이 생겼고 더 알기위해 어떤걸 공부하면 좋을지 말씀드렸더니 되도록 집착적으로나 혼자 압박감을 만들어내서 공부하지 말고, 진짜 궁금하고 알고싶으면 공부하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에릭 에릭센의 '자아심리학'을 읽어보면 좋을거 같다고 말씀해 주셨다. 다음시간에는 지금까지 받아온 상담처럼 그냥 일상생활에서 느낀점을 기억해 놨다가 와서 말해달라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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