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1. 주인공인 지연이 희령으로 이사와 할머니와 만나며 진행되는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증조할머니 삼천이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읽다보면 도대체 엄마랑 주인공 사이에는 무슨일이 있었길래 저리 서먹한지, 엄마랑 할머니 사이는 왜 이렇게 소원한지 궁금해진다. 엄마는 이혼한 딸에게 ‘남자가 바람한번 피웠다고 이혼하는게 말이되냐’, ‘전남편이 받을 상처를 생각해라‘라고 한다.
세 사람 사이의 관계는 증조할머니의 이야기가 할머니의 이야기로 이어져내려오며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한다. 엄마인 미선은 딸이 평범한 가정을 이루기를 너무나도 바라는 마음에, 또 할머니인 영옥은 딸에게 평범한 가정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관계가 틀어진걸까. 소설 후반부 각자 묻어뒀던 아픔을 다시 꺼내고 나서야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2. 참 가슴 먹먹해지는 소설이다. 나, 그리고 우리 엄마, 할머니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단순히 가족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별의 순간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누군가를 떠나오거나 떠나보내는 순간은 항상 슬프다. 삼천이가 개성으로 떠나며 투병중인 어머니와 이별하고, 새비아저씨가 일본으로 떠나고, 다시 요양때문에 새비식구가 다 떠나고, 피난길에 오르며 봄이를 떠나보내고, 증조부가 입대하는바람에 이별하고, 대구에서 희령으로 옮기며 명숙할머니와 이별하고... 재회의 순간도 많지만 그만큼 이별이 많았다. 그래서 더 먹먹한 것 같다.
3. 여러 가정이 나온다. 화목하고 친구같은 가정으로 새비부부와 막내삼촌네, 그리고 권위적이며 애정이 없는 가정으로 삼천이네와 지연의 큰삼촌네가 있다. 후자의 남편들은 남들에게 잘해주고 좋은 평가를 받지만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는 소홀한 모순이 있다. 지연의 남편은 바람을 피우고도 태연한모습을 보였고 결국 이혼을 했다. 작품 속 권위적이고 가정에 소홀한 남편들의 모습은 작가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투영된건지, 작품을 쓰다보니 그렇게 된건지 궁금하다.
구절
13pg : 이혼 후 지우가 남편을 개새끼라고 욕한다며 그 어원에 대해 서로 토의하던중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게 아닐까. 그런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 참 사람 마음이라는게...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은 우습고 쉬워보이고.. 그런사람이 돌이켜보면 참 소중한 사람인데. 알면서도 참 쉽지않은가보다.
60pg. 시숙이 증조부네에 방문하고, 증조모가 쌀밥을 엎어버리고 난 후“그렇게 침묵 속에서 밥을 먹으며 그녀는 처음으로 체념이라는 걸 배웠다 … 남편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 ..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내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그것이 그녀 평생의 의문이었다.”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잃은 그만큼을 아내는 보상해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자신의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자신과 달리 당당하고 강인한 그녀를 동경하면서도 두려워했다.”
- 증조부와 증조모의 결혼생활이 어땠을지를 가늠해볼수 있는 부분. 이럴거면 정말 데리고 떠나오지 말았어야했다.
- 증조부 자체가 양반집에 귀하게 자라서 세상물정모르고 자기가 어떤사람인지도 모르고 이미 삶의 기준치가 높은 사람이다
86pg
‘나는 항상 나를 몰아세우던 목소리로부터 거리를 두고 그 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지만 이렇게 산다면 얼마나 힘들까.
99pg 새비아주머니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이 전남편 꿈을 꾸고난 뒤 하는 생각
‘내가 새비아주머니의 입장이었더라도, 나는 남편을 위해 그만큼 울었을 것이고 남편을 다시 만나서도 그만큼 행복했을 것이다. 전남편이 저버린 것은 그런 내 사랑이었다. 내가 잃은 것은 기만을 버리지 못한 인간이었지만 그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었다.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 경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나는 패자가 아니었다’
- 주인공이 전남편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조금은 알려주는 부분
156pg
‘인내심 강한 성격이 내 장점이라고 생각했었다. 인내심 덕분에 내 능력보다도 더 많이 성취할 수 있었으니까. 왜 내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인내하려고 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누려야할 무언가가 아니라 수행해야 할 일더미처럼 느껴진 것은. 삶이 천장까지 쌓인 어렵고 재미없는 문제집을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오답노트를 만들고, 시험을 치고, 점수를 받고, 다음 단계로 가는 서바이벌 게임으로 느껴진 것은. 나는 내 존재를 증명하지 않고 사는 법을 몰랐다. 어떤 성취로 증명되지 않는 나는 무가치한 쓰레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은 나를 절망하게 했고 그래서 과도하게 노력하게 만들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와 가치가 있는 사람들은 자기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문득 소리 내어 말하고 싶어졌다. 그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예전에는 그렇게 반짝이고 희망이 있던 사람이 업무만 겨우 따라가는, 지치고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게 안타깝다는 말요.’
- 작가가 인생의 힘든 시기에 이 책을 썼다고 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조금 느껴지는 부분인거같다.
191pg : 정신과 약 복용하는걸 들키고 주인공과 엄마가 싸우는 장면
‘이런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엄마나 나나 서로에 대해 많은 걸 포기했었다. 그런데 어째서 다시 이렇게 부딪치게 된 걸까. 나를 방어하기 위해서 결국 엄마를 공격하게 되는 패턴을 반복하고야 말았다. 상처 주고 싶지 않았지만 끝내 자신을 꺾지 않고 나를 비난하는 엄마를 견딜 힘이 내게는 없었다’
- 나도 참 부모님과 말다툼할때는 이런 패턴이었던거 같다.
220pg
‘가끔씩 희자가 편지를 보내왔지만 할머니는 거의 답장하지 않았다. 희자에게 글을 쓰다보면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고,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수록 마음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어렴풋이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이 글을 쓰는 동안 분명해졌는데, 그건 할머니의 일상을 위협할 뿐이었다.’
- 내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내 감각을 무시하는 동안 나는 망가져간다. 어느 순간 쌓이고 쌓여왔던 답답한 감정들은 끓어 넘친다.
221pg
‘그는 세상 사람들이 덜 고통받고 더잘사는 세상을 꿈꾼다는 말을 하면서도 할머니의 발이 얼마나 부어있는지, 가끔씩 배가 뭉칠 때마다 할머니가 얼마나 큰 두려움을 느끼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말하면서 할머니가 벌어온 돈은 아무렇지 않게 앗아갔다. 그런 그를 볼때면 할머니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노가 서린 웃음이었다.’
- 왜 사람들은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등한시하게 될까
249pg : 조부가 남편이 떠나게 내비둔 영옥을 나무라던 장면
‘기래요. 당신없이 나 살기 어려웠을 겁니다. 내 그래 당신 고마움 모르는 사람 아니요. 내 당신 그늘 아래서 여태 별 탈 없이 살았으니, 기래서 내를 빚쟁이 대하듯 햇시까. 내래 당신한테 기렇게 빚을 졌다구.’
- 증조모가 증조부에게 드디어 한 소리 하는 장면. 통쾌하면서도 그동안 참고살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271pg
‘엄마는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이라고 말했었다. 아빠와의 결혼으로 자신도 평범한 가족을 꾸리게 되어서 좋았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하던 엄마를 예전에는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릿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은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
- 읽다보니 엄마가 이혼에 대해서 왜 그렇게 세게 말했나 조금은 이해가되네. 자기 딸은 자기처럼 살지말고 평범한 가정에서 살기를 얼마나 바랐을까
278pg
‘착하게 살아라, 말 곱게 해라, 울지 마라, 말대답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싸우지 마라. 귀에 딱지가 앉도록 그런 얘길 들어서 난 내가 화가 나도 슬퍼도 죄책감이 들어. 감정이 소화가 안되니까 쓰레기 던지듯이 마음에 던져버리는 거야. 그때그때 못 치워서 마음이 쓰레기 통이 됐어. 더럽고 냄새나고 치울 수도 없는 쓰레기가 가득 쌓였어.’
- 별일아닌듯 넘어가고 마찰을 최대한 피하고 희생하고 그러면서 살면 진짜 병나..
298pg
‘나는 그와의 결혼으로 내가 지닌 문제와 내가 가진 가능성으로부터 동시에 도망치고자 했다. 나의 원가족으로부터, 해결하기 어려워 보이는 상처로부터, 상처받을 가능성으로부터,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사람을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가슴이 찢기는 고통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감정적인 가능성으로부터 차단된채로 미지근한 관계 속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고 싶었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대한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 중 나를 더 아프게 한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
314pg
‘지는게 이기는거다’, …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그런 마음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발버둥쳐야 했었나.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 참 읽다보면 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되는거같기도..
발제
1. 소설 속에서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가 나온다.
어떤 경우에는 떠난 사람이 이 세상에 없는게 너무 가슴아프고 그게 내 탓인것만 같아 가슴에 묻어두고 일부러 잊고 사는 반면에 (엄마가 받아들이는 정연의 죽음)
어떤 경우에는 그 사람을 오히려 더 자주 떠올리고 그것으로부터 위로를 받는다. (지연이 받아들이는 정연의 죽음 / 희자가 받아들이는 새비아저씨의 죽음)
- 본인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떠나 보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지
- 개인적으로 이미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오히려 떠올리면서 위로를 받는다는게 상상이 잘 안된다.
2. 성인 되고 나서 할머니 모시고 여행을 다녀오거나 할머니 댁에서 며칠지내다 온 적이 있는지? (며칠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낸적 있는지)
- 개인적으로 어머니, 할머니 모시고 셋이 일본으로 온천여행 다녀왔던게 많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살면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이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여행하면서 할머니께서 ‘정말 고맙다, 너무 좋다’라고 말씀해주셨던게 가끔씩 떠올라 먹먹하고 뿌듯하다.
- 어머니도 자기 버킷리스트를 내가 대신해준거라고 고마워하셨고, 할머니랑 있던 감정의 골이 조금은 풀렸다고 하셨다.
- 여행 후 찍은 사진들을 출력해서 앨범에 정리해 할머니께 드렸는데, 소설 후반부 딸의 사진을 정리하고, 또 가장 소중한 사진을 할머니에게 전해준 엄마의 이야기를 보며 저 때의 생각이 났다
- 만약 조모님께서 살아계시고 정정하시다면, 한번쯤 해보시길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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